이기적 인간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대전제를 무너뜨린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시도 중 하나가 신견과학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신경과학에서 발견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의 존재가 그 위대한 발견 중 하나다. 거울 뉴런이란 우리 몸속에 있는 신경 네트워크의 일종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거울처럼 반영해 모방하는 역할을 한다. 이탈리아의 신경심리학자 지아코모 리촐라티 연구팀이 원숭이 실험을 통해 처음 발견했다. 리촐라티 연구팀은 원숭이 뇌를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이들은 원숭의 뇌에 전극을 꽂고 워숭이가 특정 행동을 할 때마다 뇌의 활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했다. 그런데 연구팀원 중 한 명이 책상에 있는 땅콩을 집어먹으려고 손을 뻗치는 순간, 원숭이의 뇌에서 격렬한 반응이 감지됐다. 놀란 연구팀이 확인을 해보니, 그 반응은 평소 원숭이가 직접 먹이를 잡아먹기 위해 손을 뻗었을 때의 반응과 똑같은 것이었다. 이건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상식적으로 자기가 먹는 것도 아니고 남이 땅콩을 먹으려고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원숭이가 흥분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리촐라티 팀이 연구를 거듭한 결과 원숭이의 뇌에서 타인의 행동을 마치 자신의 행동처럼 인식하는 신경세포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울 뉴런이다. 거울 뉴런 덕에 우리는 타인이 배가 부르면 나도 배가 부른 것처럼 느끼고 타인이 고통을 당하면 비슷한 통증을 경험한다. 포로의 입을 열기 위해 가족을 고문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가족을 고문하면 포로는 마치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매우 괴로워한다. 이건 단지 마음의 아픔이 아니다. 실제 포로들에게 물어보면 이들인 "극심한 육체적 통증을 경험했다."라고 답한다. 거울 뉴런이 발견되기 전까지 주류 경제학은 호모 에코노미쿠스 즉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성품만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인간이 과연 타인의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이익만 챙기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은 타인이 아파하면 자신도 아파하는 거울 뉴런을 가진 공감의 존재다.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아니라 호모 엠파티쿠스, 즉 공감하는 인간이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2007년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이 큰 100인'에 이름을 올린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도발은 오랫동안 침팬지를 관찰해 다양한 결론을 도출한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다. 드 발은 인간과 가장 유사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침팬지를 관찰한 결과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전제를 다시 한 번 무너뜨렸다. 드발의 실험은 침팬지들이 사는 우리에 줄을 하나 설치했다. 그리고 침팬지가 줄을 당기면 먹이가 튀어나오도록 설계했다. 줄을 당긴 침팬지는 먹이를 얻는다. 그 일을 두세 번 반복한 침팬지는 '줄을 당기면 먹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배가 고플 때마다 줄을 당긴다. 여기까지는 매우 단순한 실험이다. 그런데 이 실험에 또 다른 장치가 있다. 침팬지가 줄을 당길 때마다 옆방의 침팬지 동료에게 고통을 준 것이다. 유리로 칸막이를 만들어 줄을 당기는 침팬지도 옆방 동료가 고통을 당하는 장면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침팬지는 곧 이 사실을 알아챘다. 줄을 당기면 나는 먹이를 얻지만, 옆방의 동료는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침팬지는 과연 동료의 고통을 모른 채 하고 계속 줄을 당겼을까? 놀랍게도 침팬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매우 배가 고픈 상태가 돼도, 침팬지는 줄을 당기는 것을 거부했다. 이들은 배부름이 주는 만족보다 동료의 고통을 더 아프게 받아들였다.
주류 경제학의 주장대로 이기적 유전자가 인간의 본능이라면 우리의 조상격인 침팬지도 결단코 먹이를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이기적 본성에 동정이나 공감 같은 감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는 법이다. 하지만 침팬지는 주류 경제학의 전재를 사정없이 박살 내 버렸다. 부유한 침팬지는 빈곤한 침팬지의 징징거림을 잠시 지켜보더니 손에 넣은 먹이를 빈곤한 침팬지 앞에 버리고 자리를 떴다. 도발에 따르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약자를 돕는 모습은 동물 사회에서 너무나 일상적이다. 침팬지들은 표점이 덤비는 상황에서도 서로를 구한다. 다람쥐들은 소리로 다람쥐 동료들에게 위험을 경고한다. 코끼리는 쓰러진 동료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쓴다. 만약 '이기적 유전자'가 본능이라면 동물들은 왜 다른 동물을 이토록 처절하게 도울까? 드 발은 단언한다. "동물들은 서로를 짓밟거나 자기 것만 챙겨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협동하고 공유하면서 살아남는다."라고 말이다. 동물들은 심지어 위로하거나 동정을 베푸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상대방의 처지와 관점을 섬세하게 파악한다. 그래서 어떤 도움이 상대에게 적절할지 고민을 한다. 동물들의 이런 행동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단어는 단연코 도덕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려 애쓰는 행동을 도덕이라 부르지 않을 방법이 없다. 공감과 도덕, 협동과 연대는 인간의 전유물도 아니고 후천적으로 교육을 받아서 생긴 것도 아니다. 이는 수천 만 년에 이르는 포유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우리의 본능이다.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더 소개한다. 공공재 게임(public goods game)이라는 것이 있다. 생면부지의 참가들을 모은 뒤 이들 모두에게 1만 원을 나눠준다. 그리고 이들에게 "받은 돈 중 일부를 공공 금고에 기부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참가자 A 5,000원을 기부하면, 그 돈은 5,000원이 아니라 갑절인 1만 원으로 불어서 공공 금고에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모든 참가자들이 기부한 돈의 갑절을 공공 금고에 모아둔다. 주최 측은 이 돈을 합한 뒤 참가자 숫자만큼 나눠 모든 개인에게 똑같이 나눠준다. 만약 인간이 진짜로 이기적인 존재라면 참가자 중 그 누구도 한 푼도 기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돈을 기부한다고 나한테 더 많은 돈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참가자가 기부한 돈은 갑절로 불어 결국 나에게 n분의 1로 돌아올 것이다. 따라서 이기적 인간이라면 얇실하게 기부에서 빠지고, 남이 많이 기부하기를 기다릴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인간은 그렇게 이기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받은 돈의 40 ~ 60%를 기부한다. 인간이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아니라는 사실은 여기서도 증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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