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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경제학이야기

신뢰 게임과 옥시토신

by 발칙한상상가 202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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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1941 ~ )는 약간의 오해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도킨스가 창조과학을 비판하기 위해 1976년 출간한 「이기적 유전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이 「이기적 유전자」인 탓에 토킨스가 마치 주류 경제학이 칭송하는 '이기적 인간'의 지지자인 것처럼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란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심지어 도킨스가 주류 경제학의 근간인 이기적 인간을 칭송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팃포탯을 발굴한 로버트 액셀로드 교수가 1984년 「협력의 진화」를 출간했을 때 도킨스는 이 책에 열광했다. 위대한 진화생물학자는 협력이 진화한다는 사실에 이토록 열광했다. "세계의 지도자들을 모두 가두어 놓고 이 책을 준 다음 다 읽을 때까지 풀어주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역설한 대목에서 도킨스가 얼마나 협력의 세계를 열망했는지 절절히 드러난다. 인간이 신뢰를 어떻게 확신시키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어떤 생물학적 특성이 협력을 선호하게 만드는 지도 함께 점검할 것이다. 

신뢰게임(trust game)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경제학과 조이스 버그(Joyce Berg)교수가 고안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최후통첩 게임과 비슷하다. 버그 교수는 게임에 참가할 100명을 모은 뒤 이들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눴다. 두 그룹 참가자들은 생면부지의 사이다. 게임이 온라인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들은 피차 얼굴을 볼 기회조차 없다. 

게임 진행자는 A그룹 멤버에게 1만 원을 쥐어준다. A그룹 멤버들은 이 돈 중 일부를 B그룹 멤버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얼마를 줄지는 전적으로 A그룹 마음이다. 여기까지는 최후통첩 게임과 완전히 똑같다. 지금부터가 룰이 최후통첩 게임과 달라진다. A그룹 멤버가 B그룹 파트너에게 얼마를 주겠다고 제안하면 B그룹 참가자는 그 돈의 세 배를 받는 것이 이 게임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A그룹 멤버가 5,000원을 제안하면 B그룹 파트너는 무려 1만 5,000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게임의 주도권은 B그룹 멤버에게 돌아온다. B그룹 멤버들은 자기 손에 들어온 돈 중 일부를 A 그룹 파트네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 얼마를 돌려줄지는 전적으로 B그룹 멤버 마음이다. 한 푼도 안 줘도 되고 받은 돈을 다 돌려 줄 수도 있다. 그리고 두 그룹 멤버 모두 이런 게임의 룰을 완벽히 이해한 상태다. 여러분이 A그룹 멤버라면 얼마를 나눠줄까? 또 여러분이 B그룹 멤버라면 받은 돈 중 다시 얼마를 되돌려줄까?

이 게임의 이름이 '신뢰 게임'인 이유가 있다. A그룹 멤버가 B그룹 파트너를 믿을 수만 있다면 A그룹 멤버는 무조건 받은 돈 1만 원 전액을 B그룹 멤버에게 몰아주는게 유리하다. 그렇게 하면 1만 원의 종잣돈이 무려 3만 원으로 불어난다. B그룹 멤버는 믿을만한 사람이기에 그 돈 3만 원을 절대 다 갖지 않고 최소한 절반(1만 5,000원)을 떼어서 다시 돌려줄 것이다. 이러면 두 사람이 갖는 돈이 최대치로 불어난다. 이게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다. 하지만 상대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면 완전히 달라진다. 이때 A그룹 멤버는 한 푼도 나눠줘서는 안 된다. B그룹 멤버가 불어난 돈을 몽땅 들고 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를 못 믿는다면 A그룹 멤버는 만 원을 다 챙겨야 한다. 정리하자면 이 게임은 파트너가 믿을만하다는 확신만 있으면 무조건 많은 돈을 주는 게 유리하다. 문제는 파트너가 누군지 아예 모른다는 데 있다. 모든 결정이 온라인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상대의 얼굴도 볼 수 없다.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버그 교수가 고안한 이 게임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백 차례 후속 실험이 이뤄졌다. 그런데 실험 결과가 대부분 비슷했다. 놀랍게도 A그룹 멤버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B그룹 멤버들에게 무려 7,000 ~ 8,000원 정도를 나눠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랍지 않은가? 상대가 그냥 도망갈 수 도 있는데, 사람들은 받은 돈의 70 ~ 80%를 선뜻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렇다면 B그룹의 반응은 어땠을까? 이 결과도 참으로 놀랍다. B그룹 멤버들은 파트너와 자신의 몫이 비슷해지도록 계산을 한 뒤 그만큼 돈을 되돌려 줬다. 예를 들어 A그룹 멤버가 2,000원만 챙기고 8,000원을 건넸다면, B그룹 멤버는 손에 쥔 2만 4,000원 중 1만 3,000원만 챙기고 1만 1,000원을 다시 되돌려준 덧이다. 이렇게 하면 두 사람의 수입이 모두 1만 3,000원으로 같아진다. 

A그룹 멤버들에게 큰돈을 건넨 이유를 물어보면 이들은 "비록 모르는 사이지만 내가 상대를 믿었는데, 설마 상대가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B그룹 멤버들은 "저쪽이 나를 믿고 돈을 보냈으니 나도 그 믿음에 보답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라고 응답했다. 이 실험이 증명하듯 사람은 설혹 모르는 사람이라도 상대를 믿는다. 그리고 한쪽에서 믿음을 주면, 반대쪽도 믿음으로 보상한다. 이처럼 신뢰란 주고받으면서 점점 커진다. 

신경경제학자인 미국 클레어몬트 칼리지 경제학과 폴 잭교수는 신뢰 게임을 할 때 참가자들의 피를 뽑아 호르몬의 변화를 살폈다. 신뢰 게임에 따르면 A그룹 멤버들은 모르는 사람이라도 상대를 굳게 믿었고, B그룹 참가자들은 상대의 믿음에 보답했다. 그런데 이들의 피를 분석했더니 놀랍게도 신뢰를 주고받은 참가들의 몸에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대거 분비된 것이다. 옥시토신은 사랑, 행복, 돌봄 등의 마음을 유발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많이 분비될수록 사람은 남을 더 돌보게 되고, 더 큰 행복을 느낀다. 실제 옥시토신은 아이를 낳은 엄마의 몸속에서 대거 분비되는데 엄마는 이 호르몬 덕분에 아이를 더 잘 돌보고, 더 행복해한다. 그래서 잭 교수는 "옥시토신은 사람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분자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신뢰 게임 과정에서 이 행복 호르몬이 등장한 것이다. 생면부지의 A그룹 멤버들로부터 거액을 받는 순간 B그룹 멤버의 몸에서 옥시토신이 대거 분비됐다. '상대가 나를 믿어줬어'라는 생각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 것이다. 또 B그룹 멤버들이 거액을 되돌려 보냈을 때 A그룹 멤버들의 몸에서 옥시토신이 넘쳐흘렀다. '내 믿음이 보답 받았어'라는 생각에 이들의 행복 수치가 크게 높아진 것이다. 이런 경험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친구 사이에서 우정이 다시 확인됐을 때 우리는 행복하다. 누군가가 나를 굳게 믿을 때 내 몸에는 옥시토신이 활개를 친다.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나의 신뢰를 나눠줬을 때 우리는 세상을 상가는 맛을 알게 된다.

인간이 이기적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게 있다. 적어도 인간은 이기적일 때 행복하지 않다. 인간은 이타적일 때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은 주고받으면서 더 커진다. 액설로드 교수님 「협력의 진화」에서 "이 이야기의 결말은, 협력이 일단 호혜주의를 원칙으로 안착이 되고 나면 덜 협력적인 전략들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즉 협력은 배신을 기반으로 한 전략들을 이겨낼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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