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MBA 과정에서 유수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성공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응답자의 93%가 능력, 기회, 운(運) 등이 아닌 매너(manners)를 꼽았다. 매너라는 말은 라틴어 마누아리우스(manuarius)에서 유래했는데 'manus'와 'arius'의 복합어다. manus는 영어의 'hand' 즉 손이라는 뜻이며, arius는 방식, 방법을 의미한다. 결국 매너란 손의 방법, 손으로 하는 방식, 다시 말해 매우 구체적인 행위 방식을 뜻한다. 매너를 이해하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단어들이 있다. 에티켓(etiquette), 커티시(courtesy), 프로토콜(protocol)이다. 에티켓은 예절, 예법, 동업자 간의 불문율이란 뜻이며 그 유래어는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베르사유 궁전 주위에 말뚝을 박아 표시했던 외부인 출입금지 표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며, 다른 하나는 베르사유 궁전을 출입할 때 지켜야 하는 유의사항과 예절을 적은 쪽지(ticket)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이처럼 에티켓은 처음에는 단순히 출입금지, 출입제한을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이후 궁중의 각종 예법(courtesy)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루이 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시에 의해 권장되고 발전해 17세기 루이 14세 시대 때는 완전한 규격을 갖추었다. 그리고 이후 나폴레옹 시절에는 국내 공식 의전의 형식으로 법령화 되었다. 오늘날의 에티켓은 이 같은 궁정 에티켓이 간소화되어 보편화된 형태이다. 프로토콜은 외교상의 의전, 의례, 의식 따위를 뜻하는 단어이다. 국가 간의 외교에서 프로토콜이 절반이란 말이 있듯이, 프로토콜은 기업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프로토콜을 잘하는 기업이 이미지도 좋다. 임원이 되려면 프로토콜에 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자리로 들어가고 어느 자리에서 빠져야 하는지 어디가 상석인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전무, 부사장 정도가 되면 프로토콜의 달인이 되어야 하며, CEO가 되면 숟가락으로 국 떠먹듯이 자연스럽게 프로토콜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몸에 밴 듯한 자연스러운 프로토콜을 보여야만 협상 테이블에서도 상대방을 부드럽게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티켓과 매너는 어떻게 다른지 쉽게 말하자면 에티켓은 행동 기준이며, 매너는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룰은 에티켓이고,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는 매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만찬에 중국 관리들이 초대되었다. 그런데 양식을 먹어본 경험이 없는 중국 관리들이 핑거볼(finger bowl)에 담긴 손 닦는 물을 차인 줄 알고 마셔버렸다. 즉 에티켓에서 어긋난 것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같이 그것을 마셨다. 상대가 한창 마시고 있는데 그 물에 손을 닦으면, 상대는 뱉어낼 수도 없고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에티켓과 매너의 차이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비록 에티켓에는 어긋났지만 훌륭한 매너를 보여준 셈이다. 이처럼 원칙이 분명하면 보다 유연 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사람은 늘 관계 속에 존재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상호의존의 고려 속으로 들어간다. 의사소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상징적 상호 작용론이라는 것이 있다. 조지 허버트 미드가 1934년에 쓴 <마음, 나 그리고 사회>라는 책을 보면 상징적 상호 작용론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한다고 할 때, I를 그 사람의 본질, 혹은 아이덴티티, 정체성이라고 한다면, A의 I와 B의 I가 있는 그대로 마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서로 마주치고, 무엇으로 서로 소통하며, 무엇을 서로에게 보이는 걸까? 바로 ME다. 즉 상대에게 보여지는 나가 소통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상대에게 기대된 나가 서로 소통한다고 할 수 있다. 좋은 관계,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상대방이 기대하는 나, 상대방이 보는 내 모습이 상대에게 만족스러울 때 가능해진다. 인간이 매너를 중시하는 이유는 나의 I와 상대방의 I가 마주쳐서가 아니다. 오히려 나의 me와 상대방의 me가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란 누군가의 기대를 받고 또 누군가에게 자신을 보여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매너란 상대에게 보여지고 기대되는 나를 규격화하는 행동 양식이다. 매너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다. 그만큼 좋은 매너는 공감과 신뢰, 감동을 준다. 프랑스에서 매너를 삶을 멋지고 성공적으로 영위할 줄 아는 방법이라고 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많은 성공한 CEO들이 자신의 성공 비결을 좋은 매너에서 찾았듯이, 좋은 매너는 공감, 신뢰,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삶 자체를 멋지게 만들어 준다. 또 매너는 배려다. 관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매너란 관계에 대한 감수성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입장 바꿔 생각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매너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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