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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경제학이야기

반사회적인 소셜 네트워킹의 문제점

by 발칙한상상가 2022.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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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없이도 정치적 극단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는 해도, 소셜 네트워크와 인터넷이 사람들의 정책적 선호가 구성되고 표출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낙관만 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즉 인터넷 혁신이 없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됐을지를 정말로 알지는 못한다. 인터넷에 접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교하는 것으로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는 없다. 종종 인터넷은 전통 매체가 곧이어받아서 보도할 루머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원천 노릇을 한다. 즉 노년층이 폭스 뉴스에서 루머 기사를 볼 때 사실 그것의 원천은 인터넷일 수 있다. 또한 젊은 층은 인터넷에 오류와 과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감안해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터넷 루머에 영향을 덜 받는 반면, 좀 더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TV 앵커의 권위를 신뢰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루머를 더 잘 믿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에 대해 우려해야 할 점들은 또 있다. 첫째, 뉴스가 유통되는 주된 장의 기능을 소셜 미디어가 하게 되면, 신뢰할 만한 기사와 논평의 생산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가짜 뉴스는 생산 비용이 적게 들고 경제적으로 보상이 크다. '현실'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으므로 타깃 독자와 시청자에게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를 가짜로 만들어 내는 것이 좀 너무하다 싶다면, 뉴스를 어디선가 복사해 오면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의 경우 온라인 뉴스 사이트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55%가 "오려다 붙인 (cut and paste)" 콘텐츠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출처가 명기된 것은 그중 5퍼센트 미만이었다. 아무리 신뢰할 만한 저널리스트가 뉴스를 생산할들 다른 사이트들이 곧바로 그것을 오려다 자기 사이트에 붙인다면 그 뉴스의 원생산자인 저널리스트와 매체가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 저널리스트 수가 지난 몇 년간 뚝 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체 저널리스트 수도 줄었고 신문사 한 곳당 저널리스트 수도 줄었다. 공론장으로서의 저널리즘을 지탱했던 비즈니스 모델은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합당한 사실관계 정보에 접하지 못하면 우리는 불합리한 내용에 더 쉽게 빠져들게 된다. 둘째, 인터넷이 무한한 반복을 허용한다는 점도 견해가 극단화, 양극화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반향실'의 문제는 단지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콘텐츠에만 노출된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에 하루 종일, 무한히, 반복적으로 노출된다는 점도 문제다. 가짜 계정들을 동원해 페이스북에서 기사들을 띄우고 진짜 유저들을 동원해 좋아요를 누르게 하면 메시지가 무한히 반복되면서 영속적으로 떠도는 것을 매우 가속화될 수 있다. 무한한 반복은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넣으며 따라서 기사의 진위를 확인하거나 확산을 멈추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리고 나중에 진실이 드러나더라도 이미 가짜가 많이 반복되고 난 뒤이므로 사안이 단순화, 선명화되고 극단적인 견해가 고착화된 것을 교정하지는 못한다. 가령 멕시코 이민자들을 비난하는 끝없는 이야기만 기억이 나고, 실제로는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태어난 현지인들보다 범죄자 비율이 훨씬 적다는 사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의 홍수로 콘텐츠 시장을 뒤덮어 버리고자 하는 강한 유인이 생긴다. 2016년 선거직전에 유통된 115건의 친트럼프 가짜 뉴스는 조회수가 무려 3,000만 회였다. 셋째, 분절적이고 읽기 힘든 인터넷 언어가 직설적이고 축약적인 표현을 촉진한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특히 트위터에서 이것이 잘 드러나는데, 이러한 언어 사용은 시민적 담론의 규범을 훼손하는 데 일조했다. 그 결과 트위터는 최신의 그리고 가장 높은 수위의 거친 언사들을 실험하는 장이 되었다. 정치 기획자들은 가장 과격한 주장을 트위터에 띄워서 이것이 너무 과한지 아닌지 반응을 살핀다. 리트윗, 종아요 등의 횟수로 판단할 때, 그러한 언사가 먹히는 것 같으면 그것을 미래에 쓸 수 있는 잠재적 전략 중 하나로 챙겨 놓는다. 넷째, 자동으로 맞춤화가 이뤄지는 것과 관련해서도 우려되는 점이 있다. 2001년에 선스타인이 반향실 문제를 언급했을 때 우려한 것은 사용자들이 입맛에 맞는 뉴스만 골라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입맛에 맞는 뉴스를 고르는 선택을 할 필요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정교한 알고리즘이 머신러닝을 통해 예측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전에 무엇을 검색했는지 등의 데이터를 가지고 우리 각자의 입맛에 맞을 법한 콘텐츠를 알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테크놀로지들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볼 수 있도록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보는데 시간을 더 많이 쓸 수 있도록 돕겠다는 목적을 꽤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에게 콘텐츠를 보내 주는 알고리즘과 관련해 맞춤화의 요구가 높아지자 피드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 친구와 가족의 포스팅이 미디어 콘텐츠보다 먼저 보이도록 했다. 하지만 맞춤형 콘텐츠를 받아 보기 위해 꼭 페이스북 사용자가 되지 않아도 되는 역설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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