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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경제학이야기

아무리 막강한 비즈니스도 10년 못 간다.(캐논 vs 제록스 대결)

by 발칙한상상가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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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제록스를 비롯한 미국의 초우량기업이 무모한 일본기업의 위험을 받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 과격한 첨병은 혼다도 도요타도 아닌 캐논이었다. 약소한 인화지 제조업체였던 제록스가 코닥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려고 '전자사전', 즉 복사기에서 신천지를 찾기 시작한 시기에 케논도 코닥을 비롯한 필름제조업체로부터 '필름 버너'라는 야유를 들었다. 돈벌이가 안 되는 카메라를 열심히 팔아서 사진 필름 제조업체를 돈 벌게 해주는 존재일 뿐이라고 여겨졌다. 미국시장에서의 과도한 경쟁과 국내시장의 포화상태 속에 중견 카메라 업체였던 케논은 다각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대실패의 역사이기도 했다. 1959년에 낸 싱크로리더(목소리가 나오는 편지)는 엄청난 재고와 광대한 공장, 신규 채용한 100여 명의 일렉트로닉스 기술자를 남기고 사라졌다. 1964년에 내놓은 전자탁상계산기도 가격경쟁과 품질문제로 30억 엔의 손실을 냈다. 그래도 당시 경영기획실의 카쿠 류자부로(1977 ~ 1989 CEO)는 다각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기술부문의 야마지 게이조(1989 ~ 1993 CEO) 사장도 미국 출장에서 보고 들은 제록스 914(1959)에 충격을 받고 복사기 사업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복사기 사업 진입을 위해 설립된 제품연구과에 중도 채용한 다나카 히로시를 배속하고, RCA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EF방식의 복사기 '캐논팩스 1000'을 내놓는다. 하지만 경쟁력이 없어서 1966년부터 수년간 10억 엔이나 적자를 냈다. 이렇게 캐논은 제록스는커녕 리고(Ricoh)에도 뒤쳐지는 형편이었다. 가쿠 류자부로와 야마지 게이조는 정면돌파를 하기로 결심한다. 제록시와 같이 보통용지 복사기를 전혀 다른 기술로 만들어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제록스의 1,100건의 특허를 전부 빠져나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프로젝트에 가담한 특허과의 마루시마 기이치는 개발진과 함께 제록스 특허를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고, 그 기술의 내용과 권리범위를 파악했다. 나머지는 그것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뿐이었다. 스무 명의 개발부대는 오직 개발에만 매달렸고, 마침내 새로운 기술로 복사가 가능한 NP방식을 탄생시켰다. 캐논은 그 후, 서구 각국에 특허신청을 내고 이에 대한 제록스의 대항 전략을 간신히 막아내며 1970년 NP-1100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NP-1100 자체는 적자 상품이었으나 NP-L7이라는 히트상품이 연이어 탄생하며 수익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판매·서비스망에서는 제록스나 리코에 상당히 뒤처진 상태라서 경쟁력이 상품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1970년대 말, 보통용지 복사기의 생산금액은 후지제록스가 1,400억 엔(1조 3천억 원), 리코가 1,300억 엔(1조 2천억 원)이었는데, 이에 비해 캐논은 400억 엔(3,800억 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캐논의 진정한 도약은 1982년 최소형 미니 복사기인 PC-10과 PC-20을 통해 찾아온다. 고객, 제공가치, 수익구조, 기업 능력의 모든 것이 제록스와 자사의 NP-1100과는 달랐다. 판매망에서 경쟁사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상품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서비스망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는 고장이 잘 나고 유지보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 가격을 낮추고, 고장이 나지 않는 혹은 고장이 나도 유지보수가 간단한 상품을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하면 지금까지와 달리 중소기업과 사업소, 개인이 사줄 것이다. 캐논은 대규모 프로젝트 팀을 편성한다. 감광드럼 등의 주요 부품을 카트리지 식으로 변경하고 '수리하는 주요 부품'에서 '교체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 바꿨다. 최종품을 점검할 수 없으므로 품질기준을 수정하여 신뢰성을 10배 이상 높였다. 기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비용가산방식'이 아니라 가전제조업체에서 배운 '판매역산방식'으로 개발했다. 판매망은 딜러에게만 기대지 않고, 일반 전기점·문구점·카메라점 등으로 넓혔다. 그리고 본체는 가격을 낮춰서 판매하고 토너가 들어간 카트리지를 비싼 가격에 판매하여 수익을 내기로 한다. 가장 중요한 부품을 카트리지 식의 소모품으로 함으로써 궁극의 갈아 끼우는 날모델을 실현한 것이다. 미니 복사기 시리즈는 저렴한 가격과 작은 크기, 유지보수 무상 서비스라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여 출시 한 달 만에 3만 대, 일 년 만에 약 700억 엔을 팔아치우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사무실에 한 대씩만 놓던 복사기를 층마다 한 대, 한 과에 한 대 놓는 사무기기로 바꾼 것이다. 미니 복사기 PC-10을 발매하기 3년 전에 그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복사기 개발센터 소장이 된 다나카 히로시였다. 그는 그때까지의 초고속 복사기 노선을 동결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3가지 비전을 제시했다. 퍼스널, 디지털, 컬러가 그것이다. 그리고 캐논은 이전에 대실패 한 신규사업과 대성공한 프로젝트인 AE-1로 쌓은 기업능력 덕분에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 복사기란 말 그대로 전자사전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광학, 전자, 기계와 화학분야의 기술이었다. 캐논은 원래 카메라 제조업체였으므로 광학과 기계기술은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싱크로리더는 실패했지만 전자공학 기술자 100명의 활약으로 전자기술도 무난히 손에 넣었다. 그들은 세계 최초의 자동노출 일안 레프 카메라 AE-1(1976)의 개발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캐논이 세계 유수의 카메라 제조업체 및 복사기 제조업체로 발돋움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70년대는 제록스의 수난시대였다. 1970년에 캐논이 복사기 시장에 진입하자 뒤이어 리코와 미놀타가 진출했다. 1975년에는 미국연방무역위원회가 제록스의 경쟁사들에게 특허 라이선스를 허용해, 제록스는 더 이상 특허를 독점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1982년에 제록스의 시장 점유율은 13%까지 떨어졌다. 압조적 포지셔닝의 강점을 눈 깜짝할 새에 잃어버린 것이다. 사상 최강을 구가하던 그 비즈니스 모델도 수명이 10여 년에 불과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10년 못 간다는 말인데, 꼭 10년이 아니라 영원할 것 같지만 오래가지 못해 결국은 무너진다는 의미입니다. 비즈니스 세계에도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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