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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경제학이야기

사회 복지 시스템의 새로운 주인공 보편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by 발칙한상상가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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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보편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은 사회 복지 프로그램계의 새로운 주인공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우아한 단순함이 있으며 실리콘 밸리 기업가, 미디어 거물, 일부 철학자와 경제학자, 정치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는 이 개념은 20세기 중반에 '복지 국가' 개념이 그랬던 것만큼이나 파급력이 있다. 보편기본소득은 정부가 모든 사람에게 상당한 금액의 기본적인 소득(미국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금액은 월 1,000달러다)을 각자의 구체적인 필요와 상관없이 일괄 제공하는 것이다. 월 1,000달러면(22년 환율 기준 128만 4,000원) 일론 머스크에게는 푼돈이겠지만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큰돈이어서 이만한 돈을 기본소득으로 받으면 일자리 없이도 어느 정도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리콘 밸리의 기업가들은 자신들이 불러온 혁신이(많은 사람들은 노동시장에서 몰아내는) 심각한 사회적 탈구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기본소득 개념을 좋아한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는 브누아 아몽이 기본소득 공약을 내세웠다. 미국에서 힐러리 클린턴도 기본소득을 언급했다.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안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하지만 찬성한 사람은 유권자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부결되었다. 인도에서는 최근 재무부의 공식 문서에 기본소득이라는 주제가 등장했고 경쟁 관계인 주요 정당 두 곳 모두가 조건부가 아닌 현금 이전 프로그램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두 당의 정책 모두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보편 프로그램은 아니다. 적어도 밀튼 프리드먼 이래로 경제학자들도 오랫동안 보편기본소득 개념에 담겨 있는 그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자는 태도를 대체로 지지해 왔다. 대게 경제학자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는 본인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는 가정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을 정부 관료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고 볼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본다면 복지 수급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고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는 그들이 알아서 결정하게 두는 것이 명백하게 옳은 일이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는 게 제일 좋을지는 당사자가 제일 잘 안다. 먹을 것을 사는 게 합리적이라면 그들은 먹을 것을 살 것이다. 옷을 사는 게 더 유용하다면 그들은 옷을 사기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미국의 SNAP 같은 제도는 지급받은 돈으로 식품만 살 수 있게 정해 놓았다는 점에서 정부가 수급자의 의사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다. 조건부 현금 이전 프로그램도 수혜자가 바람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조건으로 돈을 지급하므로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셈이다. 이러한 조건을 붙이는 것은 쓸데없이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꼴이다. 어떤 행동이 정말로 그들에게 좋은 행동이라면 정부가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그들은 그렇게 행동할 것이고 어떤 행동이 그들에게 좋은지에 대해 정부와 그들의 의견이 다르다면 당사자인 그들의 의견이 옳을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초에 좌파 성향의 새 멕시코 정부는 조건부 프로그램인 프로스페라를 조건 없는 현금 이전 프로그램으로 바꾸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건강 강좌 참석, 의료 검진등 여러 의무 사항이 여성에게 과도하게 부담이 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상 집단도 설정하지 않고 조건도 달지 않는 '보편' 프로그램에는 매우 현실적인 장점도 있다. 대부분의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수급 자격을 확인하는 절차와 조건을 잘 이행했는지 점검하는 관리 감독 절차가 수반된다. 수혜자가 돈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떤 프로그램이 가령 수혜자가 자녀를 학교에 보내거나 자녀에게 건강 검진을 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현금을 지급할 경우 그 조건을 이행했는지 확인하는 데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멕시코에서는 가정당 이전 소득 100페소를 지급할 때 비용이 10페소 정도 드는데 그 10페소 중 34퍼센트가 수급 자격을 확인하는 데 들어가고 25퍼센트는 이행 조건을 충족시키는지 확인하는 데 들어간다. 또 규정이 너무 많으면 수혜 자격이 있더라도 신청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원래 의도한 대상자 규모보다 훨씬 적은 수만 혜택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로코에서 에스테르는 수돗물이 나오는 집을 얻을 수 있도록 대출 보조를 해 주는 프로그램의 효과를 평가한 적이 있다. 에스테르가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프랑스 회사 베올리아는 베올리아 버스를 자랑스럽게 보여 주었다. 이 버스가 마을마다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새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버스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에스테르가 집집마다 다녀 보니 사람들은 프로그램의 존재에 대해서는 모호하게나마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신청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신청 절차가 굉장히 복잡했고 버스에서는 신청할 수 없었다. 수혜 대상자는 주거지와 재산 상황 등을 증빙하는 여러 장의 서류를 가지고 시청에 가서 신청서를 써야 했고 몇 주 뒤에 다시 시청에 가서 승인이 되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에스테르의 연구팀은 간단한 서비스 하나를 제공해 보기로 했다. 현장 담당자가 집집마다 찾아가서 필요한 서류의 복사본을 받아다가 신청서를 대신 작성해서 시청에 제출해 주는 것이었다. 이 개입은 매우 효과가 있어서 신청률이 7배가 되었다. 세계은행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혜 대상 여성 중 3분의 2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신청절차가 너무 복잡한 것이 한 이유였다. 규정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대부분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절차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정부 복지 데이터를 보면 이 집이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녀가 학교를 중퇴할 위험이 큰 몇몇 가정이 수급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가 불안해서 조건부 현금 이전 프로그램을 포기했다.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다가 조건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해 쫓겨나는 수모를 피하고 싶었고 그러한 일이 생길지 모를 위험을 감수하느니 스스로 먼저 나가는 편을 택한 것이었다. 이러한 근거를 토대로, 에스테르의 연구팀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가정에서 취학률을 높이려면 가난한 가정이 자녀를 잘 교육시키도록 돕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현금을 지급하는 비조건부 프로그램이 자녀를 잘 교육시킬 것을 의무적인 조건으로 두고 현금을 지급하는 조건부 프로그램보다 실제로 자녀 교육을 향상하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2.12.23 - [경제학/경제학이야기] - 중국 경제 쇼크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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