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이케부쿠로에 본점을 둔 종합 가전 양판점 빅카메라에는 한국인에게는 이색적인 코너가 있다. 텔레워크라는 간판 아래 헤드셋, 엿보기 방지 필름, 이어폰 등 화상 회의 기기들과 사무실 의자, 책상 등 사무기기 그리고 인터넷을 세팅하는 장비들이 진열돼 있다. 모두 텔레워크를 위한 사무용품들이다. 텔레워크는 텔레(tele:멀어진 곳)와 워크(work:일하다)를 합성한 조어로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해 장소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근무하는 것을 뜻한다. 재택근무, 모바일 워크, 위성 사무실 근무 등을 총칭한다. 일본은 2017년부터 일하는 방식 개혁으로 텔레워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었는데 2019년에는 텔레워크 데이즈 캠페인도 벌이며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한발 더 나아가 코로나19 이후 일본에서는 워케이션(workation)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워케이션이란 일과 휴가를 합친 단어로 관광지나 리조트 등 휴양지에 업무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휴가를 보내면서 일하는 방식이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일과 여가를 함께하는 워라벨을 완성할 수 있고 이들이 머무는 지방 휴양지에서는 공실을 줄이며 경제 활성화를 이룰 수 있다. 직장인과 지역 상인 모두를 만족시킨 일본의 워케이션 현장을 소개하겠다. 2020년 9월 홍콩의 언론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일본항공에 근무하는 히가시하라 요시마사 대리가 미국으로 워케이션을 떠난 사연을 소개했다. 올해 37세인 요시마사는 여행을 즐기는 싱글이다. 여행을 위해 최소 일주일의 시간을 쓰고 싶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그 정도 휴가를 쓰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최근 회사에서 워케이션 제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요시마사는 워케이션을 신청했다. 그 후 미국에서 세 번의 워케이션을 보냈다. 요시마사는 워케이션 동안에는 하루에 2~4시간 정도만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지냈다. 만족도가 몹시 높아 하반기에는 홋카이도 워케이션을 계획 중이다. 보편적으로 워케이션을 떠난 직장인은 번잡한 도시 속 만원 전철에 몸을 싣고 출퇴근할 필요가 없으며 풍부한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어 만족도가 매우 높다. 일도 하고 관광은 물론 휴양까지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 생활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텔레워크는 대기업이나 IT기업, 스타트업 위주에서 모든 기업이 고려해야만 하는 선택지가 됐다. 2020년 6월 17일 도쿄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원격근무 실시 상황에 따른 긴급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19로 인한 긴급사태 선언 후 일본 내 기업 중 68%가 원격근무를 도입했다고 한다. 이는 긴급사태 전 26% 대미 42% 포인트가 증가한 수치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여행 장려 캠페인을 추친하며 휴양지에서 일을 하는 워케이션도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지 못한 채 여행을 독려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텔레워크를 보다 자유롭게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호응을 얻었다. 워케이션을 준비한 지자체와 호텔들은 3년 전부터 워케이션 확대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일본 환경성은 이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잇다. 원활한 원격근무를 위해 온천마을이나 국립공원에 와이파이 시설을 정비하도록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옛 시설을 그대로 고수하기로 유명한 온천 마을에서도 워케이션을 즐기는 회사원들을 위해 시설 정비에 나섰다. 일본의 주요 여행사인 JTB도 정부의 움직임에 맞춰 2020년 7월 말 텔레워크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했다. JTB는 자치단체, 지역 및 관광 사업자와 연계한 워크 프로그램 콘텐츠를 개발하고 판매한다. 또한 워크 프로그램을 각 기업의 취업규칙에 맞추고 경비 처리 등을 연계해 워케이션을 기업 단위에서 도입할 수 있도록 새롭게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일본 정부는 워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업무 문화 확산과 침체된 지역 관광지 활성화라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한다. 일부는 현실화되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먼저 일본의 경직된 근로 문화가 대표적인 허들이다. 글로벌 여행사 익스피디아에 따르면 일본 회사원의 연차 휴가 사용률은 50% 정도다. 영국이 96%, 홍콩과 독일이 100%인 데 비해 매우 낮은 수치다. 일본 응답자 중 60%는 휴가를 사용하는 데 죄의식을 느낀다고 답했으며, 20%는 휴가 중에도 업무용 이메일을 끊임없이 확인한다고 답했다. 이런 분위기를 전환할 의식의 변화와 제도 점검이 필요하다. 휴양지의 숙박 업체들도 비즈니스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일본의 숙박 업체들은 인터넷 등 비즈니스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아 추가적인 지원과 투자가 절실하다. 그럼에도 워케이션 문화의 확산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긴급사태로 강제적 재택근무 상황이 벌어지고, 텔레워크가 확산되면서 근무지를 휴양지로 옮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미 정부 정책과 지원으로 물꼬가 트인 만큼 빠른 확산을 기대해 볼 만하다. 한국은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차 사용률은 72.5%다. 코로나 이후 재택 상황도 비슷하다. 워케이션 개념을 도입한다면 일본보다 더 빠른 호응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 역시 워라벨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주요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전통적 기업들은 글로벌 수준의 직장 문화를 만들어 우수인력 확보에 애쓰고 있다. 워케이션은 기업들의 숙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카드가 될지 모른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IT 강국으로 어느 곳에서도 인터넷을 활용한 업무가 가능하다. 추가적인 설비와 시설을 갖추는 데 큰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워케이션을 활성화할 수 있는 컨설팅 업체나, 지자체에서 워케이션 사업을 주도할 수 있는 전문 인력, 기업과 숙박 업체를 연계해주는 프로그램이 갖춰진다면 한국에서도 워케이션 트렌드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직장인에게는 워라벨의 완성을 지자체에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줄 수 있는 기업과 서비스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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