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 더 창조적으로 일하게 될까요? 지금부터 잠시 주류 경제학의 거두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 비주류 경제학의 거목인 카를 마르크스의 주장을 비교해보려 합니다. 스미스는 그의 명저 [국부론]에서 분업의 효율을 강조하며,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핀을 만드는 공장이 있습니다. 이 공장에서는 핀을 하나 만들기 위해 18개의 공정을 거칩니다. 철사를 자르고, 두드리고, 구부리고 등등의 공정을 거쳐야 핀 하나가 탄생합니다. 그런데 이 공정을 한 명의 노동자가 다 수행하면 공장에서 노동자 1명당 하루에 생산하는 핀은 최대 20개 정도입니다. 반면 이 공장에 분업의 원리를 도입하면 생산성이 말도 안 되게 좋아집니다. 공정별로 한 명의 노동자가 일을 담당해, 구부리기 담당자는 온종일 철사를 구부리기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일을 나눴더니 노동자 1명당 하루에 생산하는 핀이 4,800개로 폭증했습니다. 분업이 생산성을 무려 240배나 높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이런 분업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킨다고 비판했습니다. 노동자가 온종일 핀만 구부리면 그는 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자신이 만드는 것이 핀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인간을 부품 화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인간 본연의 모습과 자격을 되찾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노동에 어떤 의미가 부여되나에 관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댄 애리얼리의 실험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A그룹과 B그룹에게 레고 블록을 건넵니다. 그리고 '레고 블록을 다 조립하면 3000원을 드립니다.'라고 약속합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두 그룹 참가들은 대부분 3000원을 받고 조립을 마칩니다. 첫 번째 조립이 끝나면 두 번째 레고 블록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립을 마치면 대가가 2800원으로 줄어듭니다. 그래도 대부분 참가들은 조립합니다. 두 번째 조립이 끝나면 세 번째 레고 블록을 주는데, 이번에도 완성의 대가는 2600원으로 또 조금 삭감됩니다. 이런 식으로 대가를 조금씩 깎다 보면, 어느 시점에 참가들은 '안 해요, 너무 보상이 적잖아요'라며 조립을 포기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의 가치가 2000원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상이 1800원이 되는 시점에서 조립을 거부합니다. 이 실험을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눠 실시한 이유가 있습니다. 조립과 보상은 두 그룹 모두 똑같았지만 딱 한 가지가 달랐습니다. A그룹 참가들이 조립을 마치면 진행자는 완성품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이러면 참가들은 자기가 완성한 레고 블록이 무엇에 쓰이는지 알지 못합니다. 반면 B그룹 참가들이 조립을 마치면, 진행자는 그 앞에서 레고 블록을 분해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분해된 블록을 주면서 '한 번 더 하실래요?"라고 제안합니다. 이러면 B그룹 참가자들은 자기가 조립한 레고 블록이 불과 5초 뒤에 산산조각이 날 것을 알게 됩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 두 실험의 결과가 차이가 있을까?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두 실험의 결과는 같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블록을 눈앞에서 박살 내건, 참가들은 오로지 자기에게 주어지는 보상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실험을 해 보면 두 그룹의 행동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A그룹 참가자들은 보상이 200원씩 깎여도 평균 11단계까지 조립을 계속합니다. 보상이 800원으로 떨어져야 비로소 조립을 거부한 것입니다. 반면 조립품이 눈앞에서 박살이 나는 것을 바라보는 B그룹 참가자들은 평균 8단계에서 조립을 중단합니다. 보상 규모가 1400원쯤 되면 더 이상의 노동을 할 생각을 잃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인간이 자신의 노동에 부여되는 의미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뭐에 사용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노동이 눈앞에서 박살 나지 않으면 사람은 꽤 오랫동안 노동을 합니다. 반면 내 노동의 결과가 눈앞에서 박살이 나면 '내가 도대체 이 짓을 왜 하는 건가?'라는 회의감에 사라들은 노동을 더 일찍 포기합니다. 리액션과 무시의 차이는 애리얼리는 실험 참가들을 A , B , C 세 그룹으로 나눈 뒤 아주 간단한 숨은 그림 찾기 문제를 냈습니다. 참가들은 자신이 찾은 그림에 체크를 한 뒤 제출을 하면 보상으로 1000원을 받습니다. 워낙 쉬운 문제였기에 대부분의 참가자는 5분 안에 손쉽게 답을 알아냅니다. 첫 번째 과정이 끝나면 두 번째 문제가 제출됩니다. 여기 엄청 쉬운 문제입니다. 다만 두 번째 문제의 보상은 950원으로 약간 줄어듭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세 번째 문제가 주어지고, 보상은 900원으로 감소합니다. 이 실험에도 참가들을 A , B , C 세 그룹으로 나눈 이유가 있습니다. A그룹 참가자들이 문제를 품으면, 진행자는 정답이 맞는지 참가자 앞에서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정답이 맞으면 진행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액션을 해줍니다. 반면 B그룹 참가들이 답을 제출하면, 진행자는 답을 맞혀보기는커녕 답안지를 받자마자 그 앞에서 찢어버립니다. 참가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하겠나! C그룹 참가들이 답을 제출하면, 진행자는 그 답안을 다른 사람들 답안에 섞어버렸습니다. 이름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답을 섰으면 내가 써낸 답안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집니다. 고개를 끄덕여주는 리액션을 받은 A그룹 참가자들은 보상이 150원으로 떨어질 때까지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반면 나의 노동이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긴 B그룹 참가자들은 보상이 300원쯤 되자 노동을 포기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C그룹 참가자들의 결과입니다. 이들은 비록 노동이 눈앞에서 찢기진 않았지만,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내가 낸 답을 남들의 답과 섞어버렸으니, 내가 무슨 일했는지 인정받을 길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C그룹 참가들은 B그룹 참가자들과 변 반 차이가 없는 280원에서 노동을 멈춰버렸습니다. 전 세계가 이케아 가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케아 이펙트(IKEA effect)라는 행동경제학 이론이 있습니다. 이케아(IKEA)는 1943 스웨덴에서 설립된 가구 회사로 지금은 전 세계 41개 나라에 진출한 초거대 기업입니다. 이케아의 성공 비결은 완성되지 않은 조립식 가구를 파는 데 있습니다. 이케아에서 식탁을 주문하면 커다란 식판과 다리 네 개, 그리고 이들을 조립할 수 있는 나사가 배달됩니다. 대신 가격이 완성품에 비해 20%가량 저렴합니다. 그런데 이 가구 조립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가격이 20% 싼 것에 비해 조립에 드는 노동이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도 듭니다. 잘못하면 며칠 밤을 새워서 조립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이케아 가구에 열광합니다.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애리얼리는 52명의 대학생을 모은 뒤 이들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눠 다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A그룹 학생들에게는 이케아의 작은 수납 상자를 조립하도록 했고, B그룹 학생들에게는 완성품과 수납 상자를 주고 그 가구를 살펴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자신이 만든 제품, 혹은 살펴본 제품을 산다면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당연히 두 수납 상자는 완전히 똑같은 제품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상자를 직접 조립한 A그룹 학생들은 평균 0.78달러를 내겠다고 적은 반면, 완제품을 살펴보기만 한 B그룹 학생들은 고작 0.48달러만 적어냈습니다. 똑같은 제품인데도 말입니다.
다시 애리얼리는 두 그룹에 자신이 만든 제품, 혹은 살펴본 제품의 품질을 1점에서 7점 사이의 점수로 매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A그룹 학생들은 자신이 조립한 가구에 평균 3.81점을 준 반면, B그룹 학생들은 고작 2.50점을 주는 데 그쳤습니다.
물건을 만드는 일에 직접 참여하면 사람의 자부심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자신이 만든 물건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도록 만듭니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분업에 대한 애리얼리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를 생각해보면, 스미스는 핀 공장을 예로 들며 분업의 효율성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마르크스는 이런 식으로 일하면 노동의 소외가 발생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마르크스보다 스미스가 더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식경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봅시다. 지식경제 사회에서 효율성이 '노동의 의미'보다 더 중요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식경제 사회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얼마만큼의 노력과 관심을 기울일 것인지 선택해야 하고, 내가 하는 노동이 다른 일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돈이 동기 부여의 크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가 추가돼야 합니다. 노동의 의미, 창조, 도전, 주인의식, 정체성, 자부심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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