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청년 중 수많은 고시생이 장수생이 돼서도 고시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를 행동 경제학적으로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류 경제학은 "개인이 각자 이기적 선택을 계속하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최대의 효용을 가져다준다."라고 주장합니다. 고시생들이 고시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분명히 각자의 이기적 선택입니다. 개인의 이기적 선택을 모아봤더니 재능 있는 청년들이 신림동 고시촌에서 모여 인생의 폐인이 되는 심각한 사회적 비효율이 발생합니다. 사회적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들 중 상당수가 고시를 포기하고 다른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할 바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이기심에 모든 것을 맡겨 놓으면 대부분의 고시생은 장수생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함정 게임 이론은 개인이 이기적 선택을 계속할수록 사회적으로 심각한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이론입니다.
함정 게임은 예일 대학교 경제학과의 교수였던 마틴 슈빅(Martin Shubik)이 고안한 게임입니다. 슈빅 교수는 이 게임을 설계하기 위해 실제 달러를 경매에 부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을 '달러 경매 게임(Dollar Auction Gam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달러를 경매에 부쳐?'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경매란 보통 물건을 팔 때 쓰는 방식이고, 달러는 물건을 사기 위해 지불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슈빅 교수는 이를 역이용해 매우 흥미로운 게임이론의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게임 방식은 소개하면, 경매 진행자가 1만 원짜리의 지폐를 경매 상품으로 내걸었습니다. 경매의 첫 호가는 1,000원부터 시작되고 한 단계가 지날 때마다 호가는 500원씩 오릅니다. 참여자는 A와 B 두 사람입니다. 다른 경매와 마찬가지로 A와 B 중 더 높은 가격을 제사한 사람이 경매에 나온 1만 원짜리 지폐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매에는 다른 경매와 다른 특이한 룰이 하나 있습니다. 보통 경매에서는 최고액을 적은 사람이 상품을 얻고, 2등 이하에게는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함정 게임에는 최고액을 제사한 사람은 1만 원 지폐를 얻지만, 경매에서 패한 사람도 자신이 적어낸 금액을 주최 측에 바쳐야 한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가 6,000원을 불렀고, B가 다음 단계에서 6,500원을 불렀는데 A가 그 지점에서 포기를 선언했다고 하면, 그렇다면 승자 B는 6,500원을 내고 1만 원을 가져갑니다. 하지만 패자 A는 자신이 이전 단계에서 불렀던 금액 6,000원을 주최 측에 빼앗깁니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매를 시작해보기로 합니다. A와 B 모두 속으로 '만약에 1만 원 이하에서 이길 수 있다면 무조건 이익이 될 테니 일단 참가해보자'라고 생각합니다. A가 먼저 1,000원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이기면 무려 9,000원이나 이익이 발생합니다. B는 1,500원 호가에 주저 없이 손을 듭니다. 여기서 B가 멈출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기기만 하면 여전히 8,500원을 남깁니다. A는 다음 호가인 2,000원에 또 손을 듭니다. B 역시 지지 않고 다음 호가인 2,500원에 참여합니다. 이런 식으로 두 경쟁자는 연이어 호가를 올립니다. 두 사람 모두 9,500원까지는 멈출 이유가 없습니다. 9,500원에서라도 이기면 단돈 500원이라도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A가 9,000원을 부르고, 뒤이어 B가 9,500원을 불렀을 때부터 시작됩니다. 다음 단계가 1만 원인데, A는 이 단계에서 살짝 망설입니다. 1만 원을 내고 경매에서 이겨봐야 얻는 건 1만 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참여했지?'라는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A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포기하는 순간 경매의 패자가 되고, 패자는 자신의 마지막 호가(A는 9,000원)를 빼앗깁니다. 9,000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A는 경매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A는 마침내 호가 1만 원에서도 손을 들고 맙니다.
B도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A를 이기기 위해서는 1만 500원을 내고 1만 원을 받는 바보 같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지막 호가였던 1만 원을 고스란히 잃게 됩니다. 그래서 B도 1만 500원에 손을 듭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A와 B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합니다. 지면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A는 1만 1000원을 부르고, B는 1만 1500원을 부릅니다. 고작 1만 원짜리 지폐를 얻기 위해 A와 B의 호가가 1만 5000원을 넘고, 2만 원을 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 게임의 이름이 함정 게임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처음에 경매에 참여할 때는 A와 B 모두 '1000원에서 시작해? 그럼 한번 참여해보지 가볍게 생각합니다. 이기면 이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에 참여하는 순간, A와 B 모두 개미지옥에 빠집니다. 패하면 엄청난 손실이 따르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경매 참여를 멈출 수 없습니다. 손해가 나는 지점에서도 이들은 호가를 올리는 행동을 계속해야 합니다. 함정이 너무나 깊어서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길이 없습니다. 「협상의 정석」의 저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인 맥스 베이저만은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이 경매를 실시해 10년 동안 학생들에게 무려 1만 7000달러(약 1800만 원) 돈을 획득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지성인들이라는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생들도 이 함정에 빠지면 이런 사기를 당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경쟁사회의 가장 큰 폐해가 승자독식의 규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승자독식 외에 이 사회를 지독하게 피폐하고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바로 패자를 징벌하는 것입니다. 함정 게임에서 나타나듯 '패자를 벌한다'는 단 한 줄의 조항만 생겨도 사람들은 경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이 무분별한 경쟁은 사회 전체적으로 막대한 비효율을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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