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감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경제학에는 호감 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라이코 노믹스(Likeonomics)라고 부릅니다. '좋아한다'라는 단어인 Like와 경제학을 뜻하는 Economics를 합친 말입니다. 마케팅 전문가이며 조지타운 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인 로히트 바르가바(Rohit Bhargava)가 만든 용어입니다.
바르가바에 따르면 호감은 경제와 이익을 가져옵니다. 바르가바는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①진실성②관련성③이타성④단순성⑤타이밍 등 다섯 가지를 꼽습니다. 이중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바로 '이타성'입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서구 사회에서는 의료 소송이 매우 일반적인 일입니다. 특히 환자의 생명이 걸린 사건일수록 소송 규모도 천문학적입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소송을 당하느냐 안 당하느냐가 병원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과제가 되기도 합니다.
1990년대 중반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한 번도 소송을 당하지 않은 의사들과, 소송을 당한 의사들의 특징을 비교하는 연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소송을 당한 적이 없는 의사들에게는 뚜렷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들은 소송을 당한 의사에 비해 평균 3분 정도의 시간을 환자들에게 더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습관적으로 환자들을 향해 더 잘 웃고, 더 적극적으로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들이 환자에게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우선 이렇게 해 보고, 다음에 그렇게 해 봅시다'였습니다. 환자들에게 습관적으로 따뜻한 관심을 보인 것입니다.
의사가 단지 따뜻하게 웃고, 환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3분 정도를 더쓰면 어마어마한 소송비용이 절약됩니다.
호감이 곧 경제적 이익이라는 바르가바의 주장은 이렇게 입증됩니다.
같은 시기 영국 런던의 세인트 메리 병원 정신의학과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에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어떤 의사한테 소송을 더 잘 거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의 결과도 비슷했습니다. 환자들은 냉담하고 싸가지가 없는 의사를 만났을 때 훨씬 더 적극적으로 소송에 나섰습니다.
비슷한 연구가 또 있습니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 산하 벅스바움 연구소에 따르면 의사가 친절하고 더 꼼꼼히 처방전을 쓸 때 드는 시간과 비용에 비해, 그런 행동으로 얻게 될 이익(소송 회피)이 압도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역시 친절하고 이타적인 것이 경제적으로 큰 이익을 안겨준다는 뜻입니다.
이 연구를 진행한 벅스바움 연구소라는 곳이 설립된 사연도 흥미롭습니다. 대학병원 의사들이 불친절한 것은 서양이나 한국이나 다를 바가 없는 모양입니다. 2013년에는 '헬로 마이네임 이즈(Hello My name is)'라는 캠페인이 벌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이 캠페인을 주도한 이는 의사였던 케이트 그레인저였습니다.
그런데 그레인저가 난치 암 환자가 돼 병원을 방문해보니 의사들이 그렇게 불친절할 수가 없더랍니다. 자기도 의사지만 환자 입장에서 의사를 바라보니 전혀 다른 진실이 보인 것입니다.
이후 그레인저는 의사들이 환자를 만나면 최소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000입니다."라며 자기소개라도 하자는 취지로 '헬로 마임 네임 이즈'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그레인저는 SNS에서 해시태그(#hellomynameis)를 붙여 이 운동을 벌였는데, 이 해시태그가 무려 10억 개 이상 전파됐습니다. 전 세계 환자들이 의사들의 불친절에 얼마나 넌더리를 냈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레인저의 운동에 얼마나 깊은 공감을 얻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무튼 불친절하기로는 한국과 다를 바 별로 없는 미국에서 2011년 나이 여든을 넘긴 한 노인이 시카고 대학병원을 찾았습니다. 이 노인을 담당한 이는 내과의사 마크 시글러 박사였습니다. 시글러 박사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윤리 의학계의 거목으로 맥린 임상의학윤리센터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명한 시글러 박사가 여든을 넘긴 노(老) 환자를 너무 정성스럽게 돌봤습니다. 노인 부부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의사의 친절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이 부부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쇼핑몰 체인업체 제너럴 그로스 프로퍼티를 소유한 갑부 매튜 벅스바움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벅스바움 부부는 시카고 대학병원을 다시 찾아 무려 4200만 달러(480억)를 병원에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아래말로 당부했습니다.
'시글러 박사 같은 친절한 의사가 얼마나 사회적으로 큰 이익이 되는지를 증명하는 연구를 계속해 달라, 그리고 젊은 의사들에게도 의사의 친절이 환자를 얼마나 안심시키는지를 꼭 교육해 달라'
시글러 박사를 찾은 부인 캐럴런 벅스바움은 "남편이 갑자기 큰 수술을 받게 됐을 때 시글러 박사는 적절한 수술진을 찾기 위해 진심으로 애를 썼고 담당 의사로서 수술실에도 함께 있어 줬습니다. 그는 환자 개개인에게 눈을 맞추고 공감해주며 때로 집에까지 전화를 걸어 환자를 챙기는 다정한 의사였습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환자 개개인에 눈을 맞추고 환자에 공감하며 진정으로 친절했던 한 호감형 의사의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친절이 500억에 가까운 기부를 이끌어냈고, 이를 통해 설립된 벅스바움 연구소는 지금도 의사들의 친절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지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호감 경제학의 창시자 바르가바 교수의 한국어 판 책 제목은 「호감이 전략을 이긴다」였습니다. 호감을 얻는 조그마한 노력이 위대한 전략보다도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학 > 경제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부 환경과 내부 연량 분석 (0) | 2022.07.28 |
---|---|
경영 전략과 경쟁 우위 (0) | 2022.07.26 |
경영관리 이론의 변천 (0) | 2022.07.14 |
조직문화 (0) | 2022.07.14 |
조직 구조의 형태 (0) | 2022.07.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