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이 전체에 대한 것인지 1인당인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긴다. 성장률 숫자를 접하면 그것이 총성장률인지 1인당 성장률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당연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두 숫자를 혼동하면 세계 경제를 보는 시각이 상당히 왜곡될 수도 있다. 한 나라의 경제 성장 실적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가령 몇 분기 혹은 몇 년) 동안 추적하는 경우라면 1인당이 아니라 전체 성장률을 봐도 크게 상관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긴 기간에 걸쳐 여러 나라의 경제 성장률 추이를 비교 분석하려면 1인당 성장률을 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0년에서 2010년 사이 미국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6퍼센트, 독일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0퍼센트였다. 이 숫자만 보면 미국이 독일보다 경제 성적이 훨씬 더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인구는 0.9퍼센트 늘었고, 독일은 0.1퍼센트 줄었다. 따라서 1인당 성장률로 따지면 독일 1.1퍼센트, 미국 0.7퍼센트로 독일의 성적이 더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경제학에서 왜 6퍼센트 성장률을 '기적'이라고 할까? 이론적으로는 경제 성장률의 상한선은 없다. 그러나 실제로 경제가 조금이라도 성장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3장에서 우리는 18세기 말까지 거의 모든 지역의 1인당 연간 생산량 증가율이 0퍼센트에 가까웠던 것을 이미 살펴본 바 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 수치는 연간 1퍼센트로 올라갔고,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1인당 3 ~ 4퍼센트까지 증가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30 ~ 40년 동안 '기적'적 성정기의 정점에 달했을 때 증가율은 8 ~ 10 퍼센트를 기록했다. 어림잡아 1인당 생산량 증가율이 3퍼센트 이상이면 양호, 6퍼센트 이상이면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맞다. 10퍼센트가 넘는 성장률을 오랜 기간(가령 10년 이상) 유지하는 경제가 있다면, 천연자원이 발견되었거나 지난 15년 동안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처럼 전쟁에서 회복하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복리 계산법의 위력은 우리가 사용하는 성장률은 복리(Compound rate :기하급수적 비율)로 계산된다. 매년 혹은 분기 또는 측정 단위로 사용되는 기간에 늘어난 생산량이 기존의 생산량에 보태진다는 뜻이다. 가령 1,000억 달러 규모의 경제가 10년에 걸쳐 평균 10퍼센트 성장률을 기록했다면 그 경제가 매년 100억 달러 증가해서 10년 후 2,000억 달러 규모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첫해의 10퍼센트 성장률은 생산량을 1,100억 달러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두 번째 해의 10퍼센트 성장률은 1,000억 달러가 아니라 1,100달러에 대한 것이므로 생산량은 1,200달러가 아니라 1210억 달러가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10년 후 경제 규모는 2,000억 달러가 아니라 2,590억 달러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복리 계산법을 사용하면 성장률 숫자는 크게 다르지 않아도 기간이 늘어나면서 커다란 격차가 벌어진다. 한 나라는 3퍼센트, 또 다른 나라는 6퍼센트 비율로 1년 동안 성장했다면 두 나라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이 차이를 40년 동안 지속하면 6퍼센트씩 성장한 나라는 10.3배 부자가 되는 데 비해 3퍼센트씩 성장한 나라는 3.3배밖에 더 잘살지 못한다. 이 두 나라의 국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안락함과 기회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 아주 유용하게도 현재의 성장률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대강의 공식이 있다. 한 나라의 성장률을 알고 있는데, 그 나라 경제가 지금의 두 배로 성장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고 싶다면 현재의 성장률로 70을 나누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의 연간 성장률이 1퍼센트라면 생산량이 2배로 증가하는 데는 70년이 걸리고, 6퍼센트 성장률이라면 11 ~ 12년 정도가 걸린다. 경제 성장과 달리 경제 발전은 하나의 척도로만 측정할 수 없다. 우리는 생산량 수치마저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일단 생산량 통계가 있으면 성장률을 계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의 숫자로 생산 능력의 증가라는 의미의 경제 발전을 측정할 수는 없다. 생산 능력은 표현하는 이름도, 나타내는 지수도 다양하고, 이를 발표하는 국제기구도 유엔공업개발기구(UNIDO), OECD, 세계은행, 세계경제포럼 등 다양하다. 이 다양한 지수들은 한 나라의 생산 능력을 여러 측면으로 드러낸다고 생각되는 수집 가지 각종 지표를 종합해서 만들어진다. 가장 자주 사용되는 지표는 생산 구조 예를 들면 전체 제조업 생산에서 첨단 산업이 차지하는 비율, 사회 기반 시실 예를 들면 1인당 광대역 연결 수, 숙련도 예를 들면 노동자 중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 비율, 혁신 활동 예를 들면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 또는 1인당 특허 수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지수들은 너무 다양한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전문 경제학자가 아닌 이상 해석이 좀 더 쉬운 단순한 지수를 참고하는 것이 낫다. 다음은 그중 두 가지 예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투자액은 한 나라가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이다. 기술이 실제 산업에서 쓰이려면 대부분 기계나 구조물(건물, 철길 등) 같은 고정 자본(fixed capital)에 체화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총고정 자본형성(gross fixed capital formation)이라고 부르는 고정 자본에 대한 투자가 높지 않으면 그 경제는 생산 잠재력을 많이 개발할 수 없다. 그래서 총고정 자본 형성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누 투자율(investment ratio)이 개발 잠재력의 좋은 지표가 된다. 사실 한 나라의 투자율과 경제 성장률의 비례 관계는 경제학계에서 논란의 여지없이 동의가 이루어진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세계 전체의 투자율은 20 ~ 22퍼센트 정도이다. 그러나 나라 간에 격차가 크다. 중국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이 비율이 45퍼센트라는 엄청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다른 극단에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등 해에 따라 2퍼센트 정도밖에 투자하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 국내총생산의 25퍼센트 이하를 투자하고도 상당 기간 '기적'의 성장률(연간 1인당 소득 증가율 6퍼센트 이상)을 달성한 나라는 없다. 이렇게 높은 성장률을 보인 나라들은 대부분 성장률이 절정에 달한 기간 동안 적어도 국내총생산의 30퍼센트를 투자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일본의 투자율은 35퍼센트 이상이었다. 1980년대 이후 '기적'의 성장을 계속하는 동안 중국의 투자율은 국내총생산의 30퍼센트 이상이었고, 지난 10년간은 40퍼센트 이상으로 올라갔다. 그렇다고 투자율이 높은 게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투자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현재의 소비를 희생한다는 의미이고, 따라서 미래에 더 나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현재의 생활 수준을 희생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과한 투자'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가 '과한' 수준인지는 현재의 소득과 미래의 소득 가운데 어떤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투자율과 일정 기간의 투자율 추이야말로 한 나라의 생산 능력, 즉 경제를 어떻게 개발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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