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국제연합(UN)에서는 「세계행복보고서」라는 것을 발간한다. 세계 157개국을 대상으로 행복 순위를 매겨 발표하는 것이다. 2018년 발표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는 북유럽의 복지 강국 핀란드였다.
톱 10 국가들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2위 노르웨이, 3위 덴마크, 4위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복지강국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스웨덴이 9위로 처진 것이 눈에 띄는데 그래도 역시 톱 10에 들어있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톱 10 국가들도 대부분 복지 강국들이다. 중부 유럽의 복지 강국 스위스가 5위, 네덜란드 6위에 올랐다. 비(非) 유럽 국가들도 꽤 톱 10에 이름을 올렸는데 대부분 강력한 복지정책과 공공의료 정책 등으로 명성이 자자한 나라들이다. 7위 캐나다, 8위 뉴질랜드, 10위 호주가 그 주인공이다. 이에 비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18위로 뒤쳐졌고, 영미식 자본주의의 한 축을 이루는 영국은 19위에 머물러 있다. 미국과 영국은 국내총생산(GDP) 순위 74위에 불과한 중미의 코스타리카(행복 순위 13위)보다도 덜 행복하다. 명색이 세계 최강대국들 인데도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GDP 3위에 빛나는 경제대국 일본의 행복 순위가 54위로 뒤처져있다는 점이다. 또 미국과 자웅을 겨룬다는 중국의 행복 순위는 무려 86위다.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국민들이 행복하지 않은 강국이 무슨 의가 있을까? 한국은 GDP 12위를 달리는 한국의 행복 순위는 일본보다 낮은 57위에 머물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인 태국(46위)이나 말레이시아(35위)보다도 덜 행복하다. 우리가 뭔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분명해 보인다. 경제적으로 뒤처진 국가들 중 의외로 행복 순위가 높은 나라들이 꽤 된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외에도 중미의 자메이카는 GDP 규모로 세계 118위인데 행복 순위는 56위다. 즉 이 보고서는 경제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미,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이 한국보다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나라가 태국, 말레이시아보다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정답은 기준점이 중요하다. 행동경제학에는 앵커링 이펙트, 혹은 닻 내림 효과라고 불리는 이론이 있다. 조금 어려운 말로 '준거점 의존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앵커(Anchor)는 배에서 사용하는 닻을 말한다. 배가 정박할 때 닻을 내리면 닻이 바다 속 어딘가에 박혀 배를 고정시킨다. 즉 앵커는 배가 정지하는 기준점인 셈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이 늘 합리적으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착가에 빠져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 그런데 착각을 유발하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앵커, 즉 기준점이다. 어떤 기준점이 외부에서 주어지면 사람들은 그 기준점을 중심으로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명품 숍에 가보면 제일 잘 보이는 중심에 수천 만원짜리 핸드백이 진열돼 있다. 아무리 명품이 허영의 산물이라 해도 핸드백 하나에 수천 만원은 좀 과하다. 하지만 사실 이런 핸드백들은 팔려고 내놓은 게 아니다. 가게를 찾는 고객들에게 하나의 기준점(앵커)을 제시하라고 진열해 놓은 것이다. 그 핸드백을 본 고객들은 '와, 핸드백 하나에 3000만 원? 엄청 비싸다.'라는 생각을 품는다. 이후 주변에 진열된 수백 만원짜리 핸드백을 보면 '3,000만 원에 비해서 이건 엄청 싸군, 거의 껌 값이네'라며 감탄한다. 그리고 이들은 호갱이 된 줄도 모르고 카드로 결제한다. 이게 바로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의 위력이다.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행복이란 각자가 소유한 돈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돈이 많을수록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할 수 있고, 더 많은 재화를 소비할수록 만족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류 경제학에 따르면 1억 원 부자는 1억 원만큼 행복하고 1조 원 부자는 1조 원만큼 행복하다.
하지만 실제로 앵커링 효과는 주류 경제학의 이런 주장에 고개를 내젓는다. 사람은 그렇게 단순하게 자기의 행복을 측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을 체감할 때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다. 내 주변의 기준점들, 예를들면 직장 동료나 친척들에 비해 내가 더 가난할 때 사람이 느끼는 빈곤감은 훨씬 커진다. 반면 주변의 앵커들에 비해 내가 더 부유하면 상대적으로 느끼는 행복도도 높아진다.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심리학과 키스 페인(Keith Payne) 교수의 비행기 좌석과 기내 난동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기내 난동을 부리는 승객들에게 공통된 특징이 있다. 비행기의 입구는 꽤 다양하다. 이코노미 클래스 승객들이 탑승을 하면 비즈니스 클래스를 거쳐서 이코노미로 이동을 하는 경우가 있고, 바로 이코노미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 두 곳을 거쳐야만 이코노미로 갈 수 있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를 거친 고객들이 이코노미에서 난동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들의 난동 가능성은 이코노미로 직행한 승객들에 비해 2배나 높았다. 비행기에 따라 퍼스트 클래스나 비즈니스 클래스가 있는 비행기도 있고, 오로지 이코노미 클래스만 있는 비행기도 있다. 이 둘을 비교했을 때 승객들의 난동 가능성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 놀랍게도 네 배나 차이가 난다. 이게 바로 앵커링 효과의 위력이다. 사실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는 사람들은 빈곤층이 아니다.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들로 봐야 한다. 그런데 이들이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를 거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좌석에 비해 훨씬 편안한 좌석을 눈으로 본다. 그리고 그 편안한 좌석이 새로운 앵커(기준)가 된다. 앵커와 비교하면 내가 앉은 좌석은 너무나 보잘것이 없다. 이 보잘것없는 좌석에서 10시간 넘게 비행을 해야 하다니 이때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폭발한다. 이 연구를 기업으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사장 연봉이 수백 억 원, 임원 연봉이 수십 억 원이면 노동자들이 고무될 것 같은가? 행동경제학자들의 수많은 연구가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않다.'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간부들과 시간제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심할수록 제품의 질이 떨어지고 노동자들의 창의성이 줄어든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불평등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으로 페인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자신의 사다리 아래층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울증과 불안감, 만성통증에 시달릴 확률이 높고,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업무 실적이 떨어지기 쉽다. 또한 미신과 음모론에 잘 빠지며 비만, 당뇨병,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고, 수명도 상대적으로 더 짧다. 이건 실제 소득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실제 소득과 상관없이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면'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행복의 삶의 목적이라면 우리는 페인 교수의 조언을 매우 진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절대적 빈곤의 타파도 중요하지만, 부의 불평등 문제를 바로잡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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