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의 비밀
사람들은 생각보다 정액제 요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혹자는 무한 리필 식당이 망하지 않는 이유가 사람들이 정액제 선호 현상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요금도, OTT 요금도, 수많은 스트리밍 서비스들도 모두 정액제 요금 체계로 되어 있어서 매달 꼬박꼬박 소비자들의 계좌에서 요금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 정액제가 개별 요금보다 2 ~ 12% 정도 더 많은 요금을 지불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정액제 요금을 선호하는 것일지 알아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 요금이 또는 식당에서 고기를 먹을 때 최종 비용이 얼마나 나올지 확실치 않은 것을 싫어합니다. 마치 택시를 타고 어딘가를 갈 때 우리가 택시 미터기가 올라가는 것만 계속 쳐다보며 신경을 쓰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를 택시 미터기 효과라고도 합니다. 가격이 정액제로 고정이 되게 되면 이번 달 통화량이 유난히 많아지더라도, 학생들이 삼겹살 2인분을 추가하더라도 이러한 긴장감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정액제가 실제 이상으로 큰 혜택을 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정액제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정액제를 이용하지 않을 때의 비용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없지 않습니다.
한편 사람들은 같은 할인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행동에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동일한 3만 원짜리 제품이 걸어서 15분 거리의 다른 가게에서는 만원이 할인된 가격에 판다고 하면 기꺼이 15분을 걸어서 다른 가게에서 사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일한 30만 원짜리 제품이 걸어서 15분 거리의 다른 가게에서는 만원이 할인된 29만 원에 판다고 하면 그냥 처음 가게에서 사겠다는 반응이 더 높아집니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콩나물 살 때는 100원 ~ 500원이라도 깎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30만 원짜리 옷을 살 때는 1,000만 원을 깎아달라고 하면 쩨쩨하게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대로 콩나물을 살 때 500원을 깎아주면 엄청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하지만, 30만 원짜리 옷을 살 때 1,000원을 깎아주면 감사하는 말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의 가정에 의하면 10,000원의 가치는 항상 같아야 한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에는 10,000원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개인차, 편의성, 시간등에 따라 돈의 가치는 매우 상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할인 금액보다 할인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사람들은 캐쉬백(cashback) 있는 상품을 더 선호하는 경향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캐시백이 포함된 제품을 구매했을 때, 구매자의 만족도는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캐시백 금액이 이미 상품 가격에 반영되어 있는 가격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고객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된 연구에서 원래 300달러로 가격을 책정하고 판매를 했을 때의 고객 만족도와 이를 350달러로 가격을 책정하고 대신 50달러 캐시백 혜택을 주었을 때 구매자의 만족도를 비교한 결과, 캐시백 혜택이 포함된 구매자의 만족도가 더 높았다고 합니다.
PAD(pennies a day) 전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년 단위 또는 월 단위에서 지급해야 할 금액을 주 단위 또는 더 작은 일 단위로 지급해야 할 금액으로 제시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달에 3만 원으로'또는 '하루에 커피 한 잔 값으로', '하루 233원만 추가하면'과 같은 방식의 광고문 구들은 모두 PAD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달에 3만 원이라는 금액보다 하루에 천 원이라는 금액에 훨씬 부담을 덜 느낍니다. 이 전략은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통합하기보다는 분리해줌으로써 소비자가 느끼는 손실을 최소한으로 느끼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전략은 전체 금액이 소비자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위치하고 있지만 다소 부담스럽고 느낄 때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구호단체 기부 프로그램에 1년간 기부할 의사를 가정하고 연간 기부액 30만 원을 제시했을 때는 응답자들의 기부 의사가 30%였으나, 일일 기부액 800원으로 제시했을 때는 기부 의사는 52%로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렇듯 어떤 금액이나 가격은 총액을 표시하는 것보다 적은 숫자로 표시하게 되면 훨씬 더 저렴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즉 연간 보험료 96,000원 보다 1일당 보혐료 267원이 훨씬 부담이 가볍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지 전략을 소위 '푼돈 프레이밍' 전략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판매자들은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60개월 등과 같은 다양한 방식의 푼돈 프레이밍을 통해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여러분에게는 푼돈 프레임을 다시 총액 프레임으로 리프 레이 밍(re-framing)하는 지혜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같은 시간을 나타내도 시간보다 분으로 제시하였을 때 소요 시간을 더 짧게 느낀다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총 소요 시간이 1시간 30분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90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음료의 성분 함유량 표기는 그램(g)보다 밀리그램(mg)으로 환산하여 큰 숫자로 표기해야 더 많은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경우에는 역설적으로 낮은 단위로 치환하면서 더 큰 숫자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비타민 음료들이 비타민 1g이 아니라 1,000mg이라 표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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