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형 인간의 탄생

심리학자 매슬로는 성장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라고 말했다. 인간이 성장을 원하는 이유는 생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하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도 '미션 수행(행동) → 보상/레벨업(도파민)'이라는 성장의 메커니즘은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항상 성장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매슬로는 성장지향적 동기와 그 반대 방향으로 줄을 잡아당기는 안전지향적 동기 모두 인간에게 존재하며 경합을 벌인다고 말한다. 성장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내부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성장형 인간의 등장은 성공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로부터 시작한다. 성공을 정의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성공이란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는 외형을 갖추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통해서 부와 명예를 보장하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성장형 인간은 타인과의 비교나 경쟁보다 자신만의 행복을 중시하는 개척자들이다. 자기 자신을 중요시하는 성향이 강한 것이다. 더불어 변화된 행복 프레임을 통해 목표는 성장으로 바뀌었다. 행복은 미래보다 지금, 비일상보다 일상,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한 것이 되었다. 최근의 성장 트렌드는 이러한 행복 프레임에 잘 들어맞는다. 불확실한 미래의 영광이 아니라 오늘보다 발전한 내일의 나를 목표로 하고, 거창한 목표보다 손에 잡히는 성취를 향해 달린다. 대단한 일을 해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한 작은 습관 하나만으로도 성취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성장은 현재 지향적인 즐거움인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프로야근러와 탕진 잼의 소진형 생활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지속 가능한 행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쾌락에만 충실하며 살아가기에는 인생이 너무나 길다. 100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현대인은 60세를 넘기는 정년을 보장받아도 평생직장이 아닌 반편 생 직장밖에 가질 수 없다. 오늘의 성장이 확실한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미래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자명하다. 워라벨을 통해 일과 삶의 산술적 균형을 찾은 사람들은 이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구조적 재편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평생을 가져가야 할 인생의 3대 요소인 건강, 취미, 능력에서의 성장을 도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장형 인간이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변화는 정형화된 생애 단계가 해체된 것과 관련이 깊다. 이야기에 기승전결이라는 보편적인 구조가 존재하듯이 과거에는 사람의 생애에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걷게 되는 정형화된 단계가 존재했다. 결혼, 출산, 자녀, 양육, 자녀 독립이라는 가족 생애주기와 입사, 업무 반복, 진급, 업무 반복, 은퇴라는 근로생애주기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삶의 계단 위에서 사람들은 개인으로서의 성장을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이 개인의 선택으로 남고, 한 직장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신만의 스토리 플롯이 필요해졌다. 이제 사람들의 정체성은 가족,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집단성이 해체되고 철저히 개인 중심으로 재편된 사회에서 각자 정체성은 개인이 지닌 무수히 많은 상황과 지향점으로 파편화된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 흐름 위에서 취향 공동체, 북살롱 등 동일한 목적지를 향하는 사람들과 잠시 합승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와 지향점에 소속감을 느낀다. 성장형 인간이 보다 적극적으로 성장을 위한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유튜브 및 틱톡의 플랫폼 시대의 효과이기도 하다. 한국의 TED라고 불리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세. 바. 시에 유명 연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강단에 올라 자신의 성장 이야기를 풀어내는 대중 강연이 활발해졌다. 1인 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성공한 1인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채널을 통해 어떻게 성공했고 무엇을 노력했는지를 생생한 성장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닿을 수 없는 슈퍼스타가 아니라 나와 가까운 듯한 롤모델의 존재는 성장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성장의 가이드를 찾아 유명 인플루언서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인플루언서들이 추천한 도서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역전시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장을 추구하는 경향은 조직적, 사회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성장은 그 자체로 성취감과 즐거움을 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성장의 매력은 궁극적으로 행복에도 기여한다. 행복 연구의 권위자 돌란 교수는 행복은 즐거움이라는 감정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에는 즐거움과 목적의식이라는 두 개의 축이 공존한다. 목적의식이란 활동을 통해 얻는 성취감, 의미, 보람과 같은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도 휘발되지 않는 최대한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채우는 활동들이 즐거움과 목적의식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성장을 원하는 나 자신은 바로 즐거움과 목적의식 모두에 기여하는 활동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행복 담론이 즉각적인 즐거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재미와 의미 사이의 균형도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