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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경제학이야기

혼다와 도요타 자동차 미국 시장을 사로잡다

by 발칙한상상가 202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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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오토바이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혼다는 우여곡절 끝에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1963년 자동차 제조에 뛰어들어 1970년에는 미국에서 판매를 개시했다. 하지만 T형 포드(1908)가 출시된 이래 60년간 포드, 크라이슬러, GM에 익숙하고 그 딜러와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었던 미국의 풍요로운 대중에게 일본제 소형차는 환영받지 못했다. 품질도 여전히 높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싸구려에 후진 상품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그러한 흐름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마스키 법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여 5년 이내에 배기가스에 함유된 유해성분을 10분의 1로 줄인다는 시행령이 자동차 제조업체에 시행된 것이다. 미국 빅 3 업체는 모두 한 목소리로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혼다 소이치로는 이것이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구메 다다시를 중심으로 이리마지리 쇼이치로의 혼다 기술진은 총력을 기울여 저공해 환경 엔진 CVCC(부연 소실 부근의 혼합기를 짙게 점화하면 그 제트에서 주연소실의 묽은 혼합기를 효율 좋게 태우는 방식)를 보란 듯이 완성했고 이는 세계 최초로 마스키 법 기준을 통과하며 그 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마침 그 무렵에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며 혼다의 소형차는 연비와 배기가스 배출량이 적다고 주목을 받았다. 이로써 혼다는 생존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혼다는 일본의 자동차 제조업체 중 처음으로 현지 생산을 한 회사이기도 했다. 1977년 오하이오에 65억 엔을 투자하여 오토바이 생산 공장을 세우고 5년 후인 1982년에는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다. 회사 안팎에서 미국에서 제작해도 정말 괜찮을까 라는 품질에 대한 강한 우려가 있던 와중에 내린 결단이었다. 젊은 이사인 이리마지리 쇼이치로가 통솔하던 자동차 생산회사 HAM(Honda of America Manufacturing)은 직원을 노동자란 뜻의 워커(worker)가 아니라 동료라는 뜻의 어소시에이트(associate)라 불렀다. 그리고 혼다의 철학과 생산 이념을 현지에 맞게 수정한 혼다 웨이(Honda Way)를 만들어 압도적 고품질과 고생산성을 달성한다. 1970년 행운의 여신은 혼다 편이었다. 제휴를 타진하러 포드의 공장을 견학한 혼다 간부는 그 압도적 규모에 놀란 동시에 생산 이념과 방식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꼈다. 혼다는 이미 로봇을 사용한 용접과 신속한 금형 교환 등을 통한 일관생산(Unity Production)에 따라 대량생산에 의존하지 않는 고생산성을 실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다는 미국에서도 충분히 통한다 신념으로 혼다의 어코드 생산은 궤도에 올라 1986년에 제2라인을 신설하고 연간 3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했다. 혼다는 이러한 생산기술을 토대로 규모와 경험 곡선이라는 기존의 벽을 보란 듯이 뛰어넘고 미국 빅 3 자동차 업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 시장에서 혼다를 압도하던 도요타가 원래 지향했던 것도 규모에 기대지 않는 생산성 향상이었다. 도요타의 전 부사장이었던 오노 다이이치가 노년에 집필한 도요타 생산방식의 부제도 바로 탈규모 경영을 향해였다. 도요타의 생산 시스템은 간반 방식, JIT(just in time), 평준화, 7대 낭비, 자동화, 개선, 포카요케(공장 등의 제조 라인에 설치하여 부적합 제품이나 작업 실수를 방지하는 장치), 미에루카(문제점을 보이게 하라는 투명화 전략) 등 다양한 콘셉트의 집합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그중 그전까지 서구의 제조업 상식을 깨트린 개념으로 재고는 악이라는 개념과 인간의 능력을 중심으로 한 생산, 개선활동을 소개한다. 이 2가지 생산방식은 그때까지 포드와 GM이 만들어낸 생산관리와 분업의 핵심 개념을 정면에서 부정한 것이었다. 그전까지 재고란 필요에 맞게 보유하는 것이며 생산과 판매를 원활히 흐르게 하는 완충재, 윤활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포드의 생산 시스템에서도 모든 공정이 무리하게 연동되었으므로 공정 간에는 완충재로써 산더미 같은 재고가 쌓여 있었다. 하지만 오노를 비롯한 임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재고를 없애면 흐름은 지체되고 생산과 판매도 줄어들지 모르지만 그러나 완충재에 가려 있던 각 공정의 낭비, 무리, 결함도 줄여들 거라 믿었다. 이를 통해 극한까지 재고를 줄이고 생산품질을 높인다고 해서 린(Lean) 생산방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살린 공정을 추구했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분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몇 가지 작업을 처리하는 다능공이 되는 걸 장려했다. 이에 따라 작업자들이 서로의 업무를 도울 수 있어서 작업의 평준화와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개선 활동도 현장 작업자들을 중심으로 바꿨다. 서구식으로 말하자면 노동자가 엔지니어 일을 한 것이다. 어느 것이나 기존의 미국식으로는 무리였다. 미국에서는 엔지니어 직무의 영역 침해이자 노동자의 노동 강화로 비쳐 고소를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포드 도요타 GM
조달모델 수직통합 계열 수평분업
부품제조 업체와의 관계 자체 제작 협조적 적대적
이점 컨트롤 가능 유연성, 창의적 비용절감의 위력, 규모 추구
단점 유연성 결여 불황이 닥치면 부담이 큼 속도와 개발투자 부족

도요타가 취한 조달 전략도 기묘한 것이었다. 그것은 포드처럼 수직통합적인 것도 아니고 GM처럼 자유경쟁적이지도 않은 중간적인 대체물이었다. 오랜 거래로 자본이 얽혀 있는 부품 제조 업체가 몇 단계에 걸쳐 도요타를 아래에서 받치는 피라미드 구조의 조달 네트워크를 구축했는데 이를 계열 모델이라 한다. 모든 것을 내재화하면 유연성을 잃는다는 것을 포드의 리버루지 공장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조달을 자유경쟁으로 하면 단기적으로는 가격이 낮아지지만 협력관계를 맺지 못해서 여기저기 빈틈이 생긴다. 그 틈 사이로 재고와 품질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계열 모델이라서 부품 제조업체가 도요타의 제품 개발 체제에 참가한다. 또한 도요타의 조달부가 부품 제조업체의 생산, 배송 공정에 의견을 낸다. 계열 모델은 유연성을 유지한 채 지속적인 원가절감, 품질향상 조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 수천 개사로 구성된 기업 능력은 다른 기업이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혼다의 고급차 브랜드인 어큐라는 1986년부터 1990년까지 5년 연속 미국 자동차 사용자 만족도 조사 1위를 차지했다. 50%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GM은 소형차부터 차츰 잠식당하여 35억 달러를 투자한 세턴도 GM을 위기에서 구해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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