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컴퓨터보다 훨씬 위험부담이 크고, 수평 분업화되며 분산적인 비즈니스가 패션의류업계다. 이를 수직 통합하여 큰 규모의 비즈니스로 변모시킨 것이 갭(GAP)과 베네통이었다. 리스크의 근원은 속도의 차이에 있었다. 외부환경인 '유행'의 변화 속도에 내부 환경인 '산업의 가치사슬' 속도가 전혀 쫓아가지 못한 것이다. 의류업계에는 장대한 가치사슬이 있고 그것이 전부 수평 분업화되었다. 염료제조업체가 원료를 확보하여 염료를 생산하고 방직업체가 실을 꼬아서 염색하고 직물업체가 직물을 짜서 천으로 만들고 의류업체가 기획하고 봉제업체가 자르고 기우면 옷이 완성되고 소매점에 납품되어 마침내 매장에 진열된다. 그 과정이 자그마치 보통 2년이다. 유행은 몇 주 사이에 변하는데 이러면 유행을 좇아갈 수가 없다. 당연히 패션성이 높은 것은 소량 다품종의 고가 제품일 수밖에 없다. 1969년 유대계 미국인 도널드 피셔와 아내 도리스 피셔는 그때까지 비즈니스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청소년을 상대로 리바이스 청바지와 레코드를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한다. 이것이 성공하여 1974년에 운영 점포가 25개를 넘자 마침내 독자 브랜드 갭을 기획, 판매하기 시작한다. 1986년 갭은 이를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라 불렀다. 제조는 외주를 주지만 소매점이 직접 기획하고 발주하기 때문에 다소 유행에서 벗어나도 재고를 남기지 않고 팔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여러 점포를 보유한 덕분에 단품당 발주량이 많아서, 아시아 각국의 공장에 직접 일감을 맡김으로써 비용을 대폭으로 낮출 수 있었다. 공급업체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아서 재고일수를 49일로 경쟁사의 절반으로 줄이고 신상품도 2개월마다 투입하는 체제를 구축하여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 갭은 '적당히 패셔너블한 옷'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함으로써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수직통합 모델의 승리였다. 1987년 600 점포를 넘었고 매출은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베네통도 독특한 컬러 감각과 후염기술 지역 중소 봉제 업체와의 네트워크를 무기로 패셔너블한 SPA 브랜드로서 유럽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80년 ~ 1990년대는 갭과 베네통이 세계를 석권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여전히 기획한 것을 대량으로 외주로 발주해 전량 판매하는 부분형 SPA에 머물고 있었다. 그에 비해 월드는 1990년대 전반, 오조크라는 브랜드로 완전한 SPA모델을 확립했다. 월드는 잘 팔리는 상품을 재빨리 재투입하는 구조를 기반으로 1993년 오조크에 이어 1995년에 언타이틀, 인디비, 인덱스 등의 브랜드를 차례로 출시하며 거품 붕괴 후의 실적 부진을 떨쳐냈다. 소매부문이 월드의 핵심사업이 되었고 10년 후인 2003년에는 도매부문의 매출 비율이 20% 이하로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월드에서 신사복 브랜드인 다케오키쿠치와 돌체를 만든 데라이 히데조는 도매 사업이 최고 이익을 낼 무렵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가 생각하기에 도매사업은 손실과 리스크가 너무 컸던 것이다. 그 계기는 우연히 읽은 스즈키 도시후미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스즈키는 그 기사에서 초우량기업이라 일컬어지는 세븐일레븐도 겉으로 드러난 이익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손실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데라이는 세븐일레븐조차 그런한가라고 충격을 받고 자사는 어떤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매라는 상거래 관행에 젖어 알게 모르게 새어나가는 큰 손실과 리스크를 발견해낸 것이다. 보통 수주는 시즌의 반년 전 패션쇼에서 결정된다. 그러다 보니 유행을 제대로 읽어도 추가 발주에 맞추지 못하고, 유행을 맞히지 못하면 대량의 재고가 남아 엄청난 적자를 본다. 판매방식도 납입처에서 정했으므로 아무런 의견도 낼 수 없었다. 1991년 경영기획 본부장이 된 데라이는 독자적인 SPA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스팍스(SPARCS) 구상'을 발표했다. 일주일 주기로 고객의 니즈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국내 공장을 통한 납기 4일의 다품종 소량생산 시스템과 상품의 머천다이징, 가설 검증 사이클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것은 매장을 기점으로 했다. 상품은 주말을 낀 토요일과 일요일에 잘 팔리기 때문에 발주에서 납입까지가 4일(월요일 발주 → 금요일 납입)이라면 잘 팔리는 상품의 납기를 맞출 수 있다. 상품 구성이나 디자인 매장에서의 판촉 관계자가 매주 한자리에 모여서 재빨리 궤도수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스팍스 구상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거품경기의 여운에 취해서 데라이의 제안에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데라이는 적자로 사업 철수 예정인 브랜드에 시선을 돌리고 거기에 속해 있던 젊은 사원들에게 요청했다. 사원들에게 브랜드 안을 내게 하고 그중 하나를 골라서 뜻을 함께하기로 한 20명만 남게 했다. 사원들의 의욕은 최고조에 달했다. 첫해에는 참고할 만한 전년도 실적도 없었거니와 제조를 위탁한 공장도 생산에 대응하지 못해서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사원들도 데라이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듬해 1994년에 오조크를 만들고 1995년의 한신히메지 대지진이 지나간 후 1996년에야 드디어 흑자를 냈다. 재고일 수는 22일 갭의 절반 이하였고 이로써 팔고 남은 상품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데라이는 이어서 '언타이틀'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스팍스 구상 2단계 실현에 착수했다. 공급자를 WP2(World Production Partners)로 조직화하려는 시도도 그중 하나였다. 2000년 스페인에 본거지를 둔 제조 소매업체인 인덱스(주 브랜드는 자라)의 세계 점포 수가 마침내 1,000곳을 돌파했다. 그 3분의 1 이상이 해외에 있었고 매출의 절반을 차지했다. 매출액은 약 260억 원이었다. 갭과는 여전히 5배나 차이가 났지만 성장률은 연간 30%였다. 수익률도 훨씬 웃돌아서 스웨덴에 본거지를 둔 H&M과 함께 시장에서 성숙단계에 들어간 갭을 맹추격했다. 하지만 인덱스와 H&M은 갭과 정면으로 싸운 것은 아니다. 다른 타깃, 다른 수익구조, 다른 핵심역량을 발휘해 공격했다. 자라(ZARA) 브랜드는 대량의 주문 취소 상품을 처리하기 위한 소매점이 시초였다. 인덱스의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고육지책으로 스페인 각지에 여성 패션 소매점을 열고, 산처럼 쌓인 주문 취소 상품을 겨우 다 팔았다. 1975년의 일이다. 원래 일가에서 봉제부터 물류, 판매까지 하던 작은 기업이었으므로 오르테가도 자연히 제조 소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전까지의 갭 식 제조 소매 상식을 뒤집었다. 예측해서 대량으로 발주하는 것을 그만둔 것이다. 자라는 유행을 미리 읽는 힘을 기대지 않기로 했다. 올해의 유행은 이것으로 한다고 선전하며 유행을 만들어 내지도 않았다. 그 대신 신제품을 끊임없이 출시하여 소비자의 진정한 취향을 찾고 거기에 맞춰갔다. 늘 현재의 유행을 좇기 위해서 시장에 투입한 지 일주일간 반응이 나쁘면 그 아이템을 매장에서 빼고 추가 주문도 취소했다. 반대로 어떤 아이템이 아무리 잘 팔려도 4주 이상은 매장에 걸어놓지 않았다. 고객이 여러 번 매장을 방문할 수 있게 그리고 지금 사지 않으면 안 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자라 애호가들은 해마다 평균 17번(3주에 한 번) 매장을 방문한다고 한다. 다른 브랜드에서는 해마다 4번이라고 하니 큰 차이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덮어놓고 신규 고객을 쫓아가거나 타깃을 넓히려다 타깃이 애매해지는 상황을 없앴다. 유행을 예측하는 대신 충실하고 신속하게 좇다 보면 매출도 안정되고 동시에 세일 비율이 낮아져서 수익성도 오른다. 하지만 갭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기획하고 나서 매장에 진열될 때까지 9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자라는 그것을 2주 만에 실현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갭보다 약 20배가 빠른 속도다. 특히 기획, 시작 부분을 자체적으로 함으로써 작업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스케치 디자인 구상 4일, 샘플 상품의 제작 4시간 방식이다. 생산 면에서는 베네통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에 있는 중소제조업체에 맡겨 타사와 차별성을 두었다. 이렇게 해서 패션성이 높은 의류를 저렴한 가격에 다품종으로 제공하는 패스트패션형 의류기업이 탄생했다. 인덱스는 21세기에 들어와서 매출이 급신 상하였고 2009년에는 갭을 추월하여 세계 제일의 SPA 브랜드가 되었다. 자라는 끊임없이 상품을 만들어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세계 제일의 의류기업이 되었다. 현재 자라의 대항마로 H&M 선전하고 있으며, 포에버 21이 그 뒤를 쫓고 있다. 인덱스, H&M, 갭의 세계 3강 구도에 일본에서 유일하게 격차를 좁히고 있는 것이 유니클로 브랜드를 소유한 패스트리테일링이다. 유행을 반영하여 빠르게 제작하고 유통하기보다는 소재력, 개발력을 살린 기본에 충실한 대형 상품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1988년에 후리스, 2006년에 히트텍, 2008년에 브라톱, 2009년에 울트라 라이트 다운처럼 큰 인기를 얻었던 상품은 대부분 업계 가치사슬의 가장 상류에 있는 섬유회사와의 공동연구개발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특히 2006년부터 도레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일심동체로써 73개나 되는 상품개발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패션성은 유지하면서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심플하고 자유자재로 조합해 입으며 즐기는 옷을 추구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한번 좌절했던 해외진출 재도전에 성공하여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하고 있으며 22년 현재 시가총액은 81조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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